일단 시간이 생기면 미뤄둔 병원부터 가는게 최고인 나이가 시작되었다. 내년이 되면 또 다시 '몸이 예전같지 않다'는 생각이 갱신될 것이므로, 올해가 지나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대비하기로 했다. 제일 먼저 떠오른건 대상포진.
부모님 두 분 모두 대상포진을 앓으신 적이 있던 터라 나는 대상포진의 무서움을 많이 느끼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수포와 더불어 내가 어떻게 도울 방법이 없는 본인만의 극심한 고통.. 두 분 모두 치료 기간 내내 나에게 대상포진 예방 접종을 꼭 하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던게 기억나서 이번 기회에 맞기로 했다.
대상포진은 어릴적에 얻었던 수두 바이러스가 면역력 떨어진 틈을 타서 비집고 나오는 거라고 한다. 그래서 예방 주사도 생백신을 주입하는 형태가 많이 쓰이는건가?
다른 예방접종에 비해 대상포진은 비싼 편이었다. 우리집 앞 병원에서는 국산 13만원, 수입 15만원. 대상포진 예방접종 가격이 원래 이렇게 센가...? 다행히 경기도 재난지원금을 받은 후에 쓴 일이 거의 없어 잔액이 많아 이 기회에 사용했다.
맞고난 직후에는 코로나 백신처럼 통증이 강한 편이라 연락 중이던 친구들에게 카톡으로 난리부르스를 췄는데, 결제 마치고 겉옷까지 챙겨 입으니 언제 아팠냐는 듯 싹 사라져서 당황했다. 5분 천하였음 ㅋㅋ
대상포진 예방 주사는 근육 주사가 아니라 피하 주사여서 팔뚝에서도 약간 뒷쪽의 살이 더 붙어있는 부위에 맞았고, 생백신이라 접종 부위에 수포가 약간 올라올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런 경우는 수포를 터트리지 말고 바로 병원으로 오라는 안내를 받고 나왔다.
집에 돌아오니 어지러운 방이 갑자기 눈에 들어와서 청소한다고 다 뒤집어 엎었다. 2년 간 공부하며 중간에 성에 찰만큼 치운게 한 번 밖에 없으니 깨끗할 리가 없지..
쓰던 책상 옆에 보조 역할로 하나 더 붙여놨던 보조책상을 방 한 쪽으로 밀어놓고 취미 생활 할 때 작업대로 쓰기로 했다. 그 위에 쌓여있던 온갖 자료를 보관할 것, 버릴 것, 이면지, 파쇄할 것으로 나눴다. 그 외 실습에 사용했던 장비나 모듈들 그리고 책도 다 정리하니 갑자기 방이 한층 넓어진 기분이었다.
한 세시간 동안 치우고나니 이제야 좀 돼지우리를 벗어났다. 공부하는 동안 방을 제대로 돌보질 못했더니 정말 상상 이상으로 엉망진창이었다. 뭔놈의 버릴 자료랑 이면지가 저만큼 나오는지.. 저만큼을 빼고도 킵할 자료는 책꽂이 한 칸이 넘어가는 양이었다. 나 열심히 살았다ㅠ 잘했어 나야ㅠ
미뤄뒀던 일을 두 가지나 끝내고나니 문득 엉뚱한 짓도 하고 싶어졌다. 바로 과자집.
생각이 나자마자 바로 설계에 들어가 자재를 신중히 선택했다. 일단 필수 자재로 몇 가지를 꼽았는데 아이비 크래커, 빠다코코넛, 막대과자이다. 여기에 접착제 역할을 해줄만한 게 뭐가 있을지 한참을 고민했다. 초콜릿을 녹여서 사용하자니 생각보다 단단하게 부착되지 않을 것 같고, 실제 풀을 사용하자니 겉만 번지르르하고 결국 먹을 순 없어지니 그냥 돈지랄 과자지랄인 것 같아서 그건 또 싫고. 유툽에서 검색하다보니 가끔 보던 유투버가 아들을 데리고 과자집을 만드는 영상을 발견했는데, 그 채널에선 아예 과자집 만들기 세트를 사용하고 있었다. 세트에 접착제로 사용되는게 뭔가 봤더니 물엿 튜브였다. 이거구나..!
얼추 큰 그림을 그려놓고 마트로 향했다. 머릿속에서 상상한게 그대로 다 이뤄질 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만들어보려고 떠오르는걸 다 샀다. 한번에 이정도 양의 과자를 담긴 봉지를 본건 초등학교 때 다니던 성당에서 크리스마스날 신부님이 주셨던 과자 선물 세트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은데 ㅋㅋ
일단 지금까지 상상한 바로는 아이비를 바닥재로 하고 빠다코코낫으로 벽을 올리는거다. 막대과자 종류들로 지붕을 꾸미고, 남은 막대는 맛동산을 연결해서 울타리로 활용할 생각이다. 현관문은 쿠크다스, 마당에는 초코송이를 심어줄 예정이다. 해보고 허전한 부분은 또 다른거 사다가 붙이면 되니까 일단 시작해야지..!
그런데 아무리 열심히 상상해봤자 접착이 맘처럼 안 되면 말짱도루묵인 일인지라 일단 테스트를 해볼 필요가 있었다. 바닥재를 어디에 깔아줄 것인가 역시 중요했다. 음식을 올릴 수 있되 적당히 크고 평평한게 필요했다. 주방을 뒤져서 안 쓰는 편백나무 도마를 꺼내 씻어왔다.
도마 위에 바닥재로 정했던 아이비를 펼쳐서 깔기 시작했다. 집에 물엿이나 올리고당은 다 써서 없고 조청이 있어 접착제로 사용했다. 고정을 위해 도마에 조청을 펴바른 후 아이비를 3X3으로 깔았다.
이건 도마에 조청 바른 시간을 제외하면 1분도 안 걸리는 작업이라 조청이 마르고 굳으며 얼마나 잘 고정되는지 테스트할 용도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과자집 만들기도 정말 쉬운 일이 아니네.. 그래서 일단 벽을 한번 세워보기로 했다. 빠다코코넛을 꺼내서 아이비 주변에 조청을 묻혀 주욱 세워봤다.
확실히 직접 해보니 부착 직후에는 제대로 고정이 안 돼서 자꾸 앞으로 뒤로 고꾸라졌다. 하는 수 없이 한봉지 더 까서 옆에 받쳐놓아 바닥과 최대한 수직을 유지하도록 서포트 역할을 시켰다. 이게 뭐라고.. 1시간이 넘게 걸리는거야... 1층을 다 올렸으니 일단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내일 2층과 지붕 올릴 준비를 해야겠다.
오늘 생각보다 여러가지를 해서 알차게 보내서 뿌듯하기도하고 재미도 있었다. 과자집은 아무래도 금방은 못 끝낼 것 같으니 사흘 투자해서 완성하는 걸 목표로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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